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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이동“의 관점에서의 세계정치경제질서 분석 - 임혜란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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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년도 ~ 종료년도 2011 ~ 2013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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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구목적 및 배경

 

 ❏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변화에 대한 이론적 시각과 분석틀 제공

 ❏ 한국의 대응전략 모색

  ​세계화가 본격화되고 냉전과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종식된 지난 20여 년간 세계 정치경제질서에는 중대한 구조적 변화들이 진행되고 있다. 우선, 생산 영역에 있어서 전 세계적 수준에서 가치생산네트워크(value production network)가 구축되고 있어서, 각국간, 각지역간 분업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인도 등 대규모 신흥시장(Big Emerging Markets) 뿐 아니라 후발국들의 급속한 산업화와 개발이 뒤따르고 있다. 반면, 환경과 에너지 문제로 인한 성장방식의 재조정 필요성이 시급해지고 있고, 지식경제(information economy)와 녹색성장 모델로의 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통화, 금융 영역에 있어서도 기존질서의 중대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금융세계화 하에서 세계금융시장이 불안정한 거대 성장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대규모 금융위기를 초래하고 있고, 전 세계적 국제수지 불균형(global imbalance)의 문제도 야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축통화의 신뢰성 문제와 지역적 기축통화, 통화전쟁의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가운데 국가간, 국가와 시장 간 관계도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국가간의 경제력 분포가 급변하고 있어서 중국이 G2 시대를 열었을 뿐 아니라 신흥시장경제들의 영향력도 크게 강화되었다. 이와 동시에 중남미와 동아시아의 지역화(regionalization)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세계경제의 중심부가 비서구 지역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무역에서 환경과 에너지에 이르는 거의 전 영역에서 비국가 행위자들의 영향력이 뚜렷해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정치경제질서의 이러한 구조적 변화들에 대해 아직 충분한 이해와 체계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책 네트워크는 물론 학계에서도 중대한 변화와 위기와 혼란을 감지하고 있을 뿐, 변화의 방향과 과정, 추동력에 대해 초점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예컨대 최근 국제정치경제학의 창시자와도 같은 커헤인(Keohane 2009)은 세계정치경제가 당면한 중대문제들로 다음과 같은 현상을 지적했다. 첫째, 경제성장과 개발이 전 세계적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경제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현상으로 무역에서 투자와 금융, 통화, 에너지, 환경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새로운 도전을 제기할 수 있다. 둘째, 중국을 비롯한 대규모 경제체의 세계시장 편입이다. 독일과 같은 신흥 산업 국가들과 신대륙의 곡물수출국들이 세계시장에 진입하면서 대혼란을 가져왔던 1870년대와 같은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셋째, 금융시장과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이다. 특히 커헤인은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이 커가는 것에 주목했는데, 이는 중국과 같은 대규모 신흥시장으로 인한 에너지 수급체계의 불안정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들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이 현상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고 있는지, 궁극적으로 어떤 지향점을 향해 가고 있는지, 단계적으로 어떤 변화들을 겪으면서 전개될 것인지, 그리고 이 변화들을 추동하는 요인이 무엇이며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체계적 논의가 시작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기 위해 본 연구는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변화를 추동하고 있는 근원적 요인으로 힘의 이동”(power shift)에 주목한다. 후술하듯이, 생산과 무역에서 에너지와 개발에 이르는 세계정치경제의 각 영역에서 물리적 능력과 구성적 권력 및 제도적 능력의 분포가 변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세계정치경제질서의 성격이 변화(혹은 지속)되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크게 네 가지 작업으로 구성된다. 첫째, 21세기 세계정치경제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시각과 분석틀을 모색한다. 국제정치경제학의 기존이론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제의식을 도입하여 세계정치경제질서 변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개발하려는 것이다. 둘째,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방향성을 가늠하기 위해 세계정치경제질서의 전반적인 성격을 규정한다. 안정/불안정이나 개방/폐쇄와 같은 기존 이론들의 단순한 규정을 넘어서서 탈서구화 되어가는 세계정치경제질서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할 수 있는 기준을 모색한다. 셋째, 세계정치경제질서의 하위영역들의 질서, 즉 생산과 무역, 통화와 금융, 에너지, 개발과 환경 등 하위질서들의 성격을 규정하고 이 질서들의 변화를 추적한다. 마지막으로 세계정치경제질서 전반과 각 하위질서들의 변화를 추동하는 요인을 찾고 그 영향을 평가한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 궁극적으로는 중대한 변화가 예상되는 21세기 세계정치경제질서에 대한 우리의 대응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 연구내용, 범위 및 방법

 

  ❏ 힘의 이동이라는 관점에서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변화 분석

  생산 및 무역, 금융, 통화, 에너지, 개발의 영역에서의 변화 메커니즘
  5개의 영역들 간의 조화 또는 부조화의 거시적 함의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변화를 설명하는 이론 틀을 모색하기 위해 본 연구는 국가 중심성과 힘의 구조라는 두 가지 현실주의 전제에서 출발한다. 비국가 행위자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고 국제체계의 통치구조가 거버넌스의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여전히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주요 행위자는 국가이며 국제체계에서 가장 근본적인 구조는 국가간 힘의 분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선행연구로 길핀(Gilpin 1981)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전형적인 현실주의자와 달리 길핀은 국제체계를 단순한 무정부”(anarchy)가 아닌 위계적 무정부”(anarchy with hierarchy)로 본다. 이 체계에는 중앙정부는 없으나 힘(power)과 지위(prestige)와 규칙과 권리(rules and rights)가 위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계적 무정부 체계에서 각국은 불균등 발전(uneven development)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힘의 이동이 발생하고, 그 결과 힘과 지위와 규칙 사이에 부조화가 일어나서 체계의 안정성이 깨지게 된다. 길핀의 모델에서 독립변수는 위계구조의 변화, 특히 물리적 능력, 힘의 변화이고, 종속변수는 체계의 안정성이다. 체계 변화를 물리적 능력의 분포의 변화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는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모두에 있어서 길핀 모델에 중대한 수정을 모색한다. 첫째, 길핀은 신현실주의자와 같이 힘을 물리적 능력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들이 제시하듯이 국제질서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능력만이 아니다. 기존 질서를 정당화/부당화시킬 수 있는 관념적/구성적 능력이 있을 수 있고, 기존 질서를 관리하는 국제제도에 위임된 의사결정능력(decisional power)도 있을 수 있다. 이 삼자 간에는 상당한 수준의 조응이 있을 수 있으나,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이들이 총체적 힘의 구성요소라고 한다면 각 요소에서의 변화가 동일하게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 질서에서 영국이 지녔던 힘은 경제적 능력과 더불어 산업화와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전파능력, 그리고 쌍무적 자유무역의 네트워크에서 누렸던 협상력이었다. 또한 20세기말의 세계화를 추동했던 것은 미국의 경제력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힘과 다양한 영역의 국제제도에서 미국이 누렸던 의사결정능력이었다.

 


 

 

따라서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변화를 추동하는 독립변수로서 본 연구는 힘의 다면성에 입각하여 세 가지 힘의 변화를 설정한다. 첫째는 물리적 능력으로서 세계경제에서 경제력 분포의 변화이다. 이것은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변화이자 측정이 용이한 변수이다. 둘째는 구성적 권력으로서 기존 세계정치경제질서를 정당화하거나 대안적 질서를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의 분포이다. 20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는 당연시 되던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이후 도전받게 된 것이 최근의 변화를 보여준다. 셋째는 의사결정능력으로, 각국이 세계정치경제질서의 각 영역의 국제제도에서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분포이다. 이 세 가지 능력의 분포, 그리고 그 변화가 세계정치경제질서의 성격과 그 변화를 추동한다.

 

  둘째, 길핀의 모델은 국제체계의 변화를 설명하려는 것이지만, 종속변수는 오직 체계의 안정성이다. 이것은 단선적이고 궁극적/목적론적이다, 국제체계가 궁극적으로 안정될 것인지 불안정할 것인지 만을 설명할 뿐, 궁극적 상태에 도달하는 과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길핀은 오직 국제체계의 안정성만을 염두에 두었을 뿐, 동일한 위계적 무정부 하에서도 다른 형태의 국제체계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컨대, 경제력의 분포가 유사했던 1860년대와 1950년대, 그리고 1990년대의 세계무역질서는 성격이 다르다. 모두 안정적인 자유무역질서였으나, 각각 고전적(classical), 내장형(embedded), 신자유주의(neo-liberal) 무역질서라는 상이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세계무역질서의 성격과 각국의 무역구조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길핀 모델의 종속변수는 체계의 안정성 뿐 아니라, 다른 중대한 속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볼 때, 길핀이 위계구조의 미시적 구성요소로 설정했던 규칙과 권리는 오히려 세계정치경제질서의 성격을 드러내 주는 종속변수에 가깝다. 기존 질서에서 혜택과 비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19세기 금본위제와 자유무역질서하의 규칙들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행위자들에게 자유무역질서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부담시켰었다. , WTOTRIPS 규정들은 후발 산업국가들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새로운 규칙들이었다.  

 



 

 

  이러한 논의를 기반으로 본 연구는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변화를 두 차원에서 조작화한다. 하나는 체계의 안정을 결정하는 것으로, 세계정치경제질서가 얼마나 준수되고 있는지, 곧 집합행동의 문제를 얼마나 해결할 수 있는지 여부로 체계의 규제(regulation) 정도이다. 다른 하나는 국제체계에서 혜택과 비용이 어떻게 배분되고 있는지, 곧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분배(distribution)적 성격이다. 경험적으로 양자 간에는 역의 상관관계가 있고 아래 그림처럼 묘사할 수 있다. 힘의 분포가 비대칭적일수록 규제력이 강하고, 규제력이 강할수록 분배는 무시된다(A). 반대로 분배적일수록 약한 행위자들의 요구가 강해지고 규제가 힘들게 된다(B). 이렇게 보면, 세계정치경제질서는 세 가지 이념형적 변화를 지닐 수 있다. 첫째는 기존 선 상에서의 변화이다. , 하위 행위자들의 힘이 증대되어 보다 분배적 성격의 질서가 이루어지면서 안정성은 약해지거나(AB), 역으로 힘의 분포가 보다 위계화 되면서 분배가 악화되고 규제가 강해지는 경우이다(BA). 둘째는 무차별 곡선 자체가 상승하는 경우이다.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보다 분배적인 질서가 되거나, 같은 분배구조이면서 안정성이 증대되는 경우로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바람직한 개선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셋째는 무차별곡선이 하강하는 경우로, 분배의 요구를 해소하지 않은 채 규제가 약화되거나, 동일한 규제력 속에서 분배가 악화되는 경우이다. 본 연구는 세계정치경제질서의 이러한 변화를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차원의 힘의 변화가 추동한다고 설정한다.

 

  그러나 힘의 이동과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변화 사이에 단선적인 인과관계를 설정할 수는 없다. 동일한 힘의 이동에도 불구하고 앞의 세 가지 변화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으며, 시간적 지체(lag)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물리적 힘의 작용에 있어서도 경제력 외에 과학기술이나 안보관계 등 다른 차원의 변수들이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비국가 행위자들의 복잡한 다자주의(complex multilateralism)의 역할에 대한 고려가 필요할 수도 있다. 따라서 힘의 이동이 반영되어 체계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작동하는 여러 가지 매개변수와 조건들의 가능성을 상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매개변수들은 세계정치경제질서의 각 영역에서 다르게 작동할 가능성도 있다. 이상의 전체적인 연구방법을 도식화하면 다음 <그림 4>와 같다.

 

  본 연구는 이러한 분석틀을 가지고, 각 세부영역간에 발생하는 복잡한 연계적 메커니즘을 밝혀내어 오늘날의 국제정치경제질서의 힘의 이동과 질서의 변화 과정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대응전략을 모색하고자 한다. 구체적인 세부영역별 연구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세부영역으로, ‘세계 생산 및 무역질서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 2 세부영역으로, ‘세계금융질서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 3 세부영역으로 세계통화질서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 4 세부영역으로 세계에너지질서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 5 세부영역으로 세계개발질서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