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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로(High Road) 사회권모델의 미시적 기초:탈 표준고용관계 수준에 따른 삶의 질 실태와 사회권 수요 - 이주희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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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년도 ~ 종료년도 2010 ~ 2015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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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구목적 및 배경

 

 외환위기 이후 한국 노동시장은 고용의 불안정과 저임금을 수반하는 비정규직화로 인해 큰 변화를 겪어 왔다. 전통적인 의미의 표준고용관계(Standard Employment Relationship)는 '안정적이며 사회적으로 보호 받는 전일제 근로로, 기본적인 임금과 노동조건이 노동법과 사회보장법, 그리고 단체협약에 의해 규제되는 일자리를 의미한다(Bosch 2004). 이러한 표준고용관계에 있는 정규직 근로자의 비중은 2002년 72.6%에 서 2009년에는 65.1%까지 감소하였으며, 그로 인해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중이 전체근로자의 1/3을 상회하게 되었다. 이러한 급격한 고용형태의 변화는 단순한 보호나 정규직화의 차원을 넘어 비정규직을 기존의 표준고용관계 내에서 발전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사회권 보장의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비정규직 관련 연구는 주로 노동 및 노동권의 차원에서 이루어져 왔다.1) 연구 초기 비정규직 증가의 원인과 규모에 대한 관심(채구묵, 2002; 김유선, 2003; 안주엽 외, 2001; 안주엽 외, 2002, 안주엽 외, 2003)은 비정규직이 점차 확산되면서 비정규직의 보호방안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논의는 노동법(이호근, 2006; 이철수, 2005) 차원의 논의와 정규직 노동조합과의 관계를 통해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와 통합을 논의하는 노사관계(정이환, 2003; 이택면, 2005; 주무현, 2004; 은수미, 2007) 차원의 논의로 구분된다. 비정규직의 사회권에 대한 연구(이병훈, 2009)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작업에서는 주로 노동의 질과 기존 사회보험에의 적용률이 낮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을 뿐, 기존 사회권 논쟁의 재구성을 통해 변화된 고용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이론적 패러다임을 제시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실업과 빈곤을 증가시킨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는 경제성장을 통해 더 이상 사회권의 제공을 미룰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초적인 사회복지체제의 확충과 지출의 증가가 변화된 경제 및 고용환경을 반영한 새로운 사회권 패러다임의 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국가는 “발전”을 추동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시민사회의 “사회권”에 대한 요구를 만족시키는 선진 복지국가로의 역할 변동에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한국 사회가 이처럼 복지국가로의 변화를 이루지 못한 데에는 전 세계적으로 기존 복지국가 모델이 기초한 노동인구 및 기업조직에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제활동의 세계화와 그에 따른 경쟁의 격화는 근대 복지국가가 기반하였던 한 직장, 그리고 한 산업에서 은퇴하는 시기까지 일하는 고용모델의 적합성을 약화시켰다. 사회보장법은 노동시장에 대한 중대한 입법적 개입이었으며 사회적 시민권의 이상적 형태와 포괄적 의제는 주로 고용에 기반하여 마련되었다(Deakin, 2002). 따라서 세계적인 경제환경의 변화와 충격에 적절한 완충기제 없이 더 심하게 노출되었던 한국의 경우 더더욱 고용형태의 급격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사회권 패러다임의 확립에 어려움을 겪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이 연구는 표준고용관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고진로(high road) 사회권 패러다임의 정립을 통해 비정규직의 확대, 저출산과 고령화, 제조업에서의 서비스업으로의 생산력 이동 등 과거 성공적이었던 발전 패러다임의 구조적 기반이 상당 부문 무너지고 있는 현 교착상황을 극복하고 사회전반의 복지와 지속가능한 발전의 통합적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고용불안, 생산적인 공공재에 대한 저투자, 저임금 일자리의 확대, 빈곤의 장기화 등은 전형적인 저진로(low road) 사회의 특징을 반영한다. 고진로 (high road)의 개념은 주로 높은 효율과 평등을 담보하는 경제체제를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차원에서 주로 논의되어 왔을 뿐, 이러한 개념을 사회권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설명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이 연구는 외환위기 이후 악화되고 있는 양극화의 해소와 표준고용관계에서 이탈한 노동인구에 대한 삶의 질 향상, 그리고 공공과 민간 양 부문의 시스템 운영체계를 개선할 수 있는 고진로(high road) 사회권 패러 다임을 제안하고 확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현재의 연구가 속한 소형과제 단계에서 이 연구는 기존의 연구가 다루지 못한 사회권모델의 미시적 기초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와 연구를 실시하고자 한다. 사회권 모델의 도입은 구체적인 정책방향의 구상에 반영될 수 있는 대상자의 삶의 질, 그리고 삶의 질을 구성 하는 다차원적인 영역 간 상관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자료와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2. 연구내용, 범위 및 방법

 

 이 소형과제는 고진로(high road) 사회권 모델의 미시적 기초를 살펴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구체적인 연구의 내용과 범위 및 방법은 아래와 같다. 

 

  첫째, 탈 고용관계 수준에 따른 삶의 질 실태와 사회권 수요에 대한 실태조사를 총 3단계로 나누어 실시한다. 1단계에서 주로 비정규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2단계에서 실시할 질문지조사의 예비조사 성격을 가진 면접조사를 실시한 후 이를 분석하여 질문지 구성을 완료하고, 2단계에서는 약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질문지조사를 진행한다. 3단계에서는 질문지 분석 결과에 기초하여 삶의 질과 사회권 수요에 대한 면접조사를 유형별로 나누어 보다 심층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이 단계에서는 특히 삶의 질 구성 영역의 중요도와 사회권의 각 구성요인 간 상호작용에 대한 파악에 집중한다. 사회구성원이 삶의 다차원적인 구성요인에 대해 어떤 우선순위를 두고 이들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작업은 삶의 질을 고양하기 위한 예방적 정책의 마련에 필수적인 작업이다.

 

 둘째, 이 과제는 일본의 경제발전과 삶의 질 간 격차에 대한 전문가인 일본인 발전경제학자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한국과 일본에 대한 체계적인 비교분석을 실시한다. 사회권 연구는 산업화가 일찍 이루어진 서구 학계의 영향력 하에 있는 분야로, 유사한 이중노동시장구조를 가진 아시아 국가와의 비교연구는 한국의 상황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도와줄 수 있다. 경제위기와 비정규직 확산, 그리고 소득양극화 등 한국과 유사한 사회적 경험을 가진 일본의 경우 경제발전의 정도와 개인의 주관적 삶의 만족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점에 대해 우리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일본의 국무조정실(Cabinet Office)는 1978년부터 매 3년마다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여 왔는데, 2008년의 경우 총 6,000명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내용은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와 근로생활, 의료 및 건강서비스, 가족, 공정성 등 영역별 만족도로 구분된다. 현재 연구팀에 소속된 일본인 학자는 이 최근 자료를 한국 연구팀과의 협의 하에 분석할 예정이며, 그 결과는 연구 3년차에 소규모 국제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 내 관심 있는 학문 및 정책 커뮤니티와 함께 공유하도록 할 것이다.

 

 셋째, 이 과제는 사회과학 내 사회정책과 관련된 주요 전공(사회학, 사회복지학, 경제학) 간의 학제적 연구 외에도 예방의학 전공자의 연구진 합류를 통해 사회과학분야와 여타 계열과의 공동연구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공동연구는 연구진의 주요 전문분야인 고용, 가족, 의료부분의 사회권 연구에 특화된 전문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각 영역 간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심화된 지식의 획득을 가능케 한다. 현재의 연구팀은 또 한 자문 위원회, 시민사회조직, 기타 정부정책기관 등 연구 진행시기마다 실질적인 피드백(feedback)을 받을 수 있는 연계망을 지속적으로 형성·강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