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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문명론적 이해 - 김문조 고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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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년도 ~ 종료년도 2011 ~ 2021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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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단계 - 유승호 교수 연구팀과 연합 (보러가기

 

 

 

1. 연구목적 및 배경

금세기 초입에 들어서면서 과거 수천 년 간 세계의 변화를 주도해온 분화적 원심력이 융합적 구심력으로 대체되는 획기적 반전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전문지식, 전문자격증 혹은 전문인은 논란의 여지없는 성취나 신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전문성에 대한 일방적 찬양이 퇴조하는 대신 탈경계(border-crossing), 통섭(consilience), 혼합(fusion), 혼성(hybrid) 등을 내세운 융합이 오히려 바람직한 사회적 목표나 이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융합적 전회(convergent turn)”는 모든 형태의 정보를 이원적 분류체계로 입력, 전환, 처리, 산출하는 디지털 기술력을 활용한 매체 융합(media convergence)을 계기로 본격화하고 있다. 시각이나 청각 등 이종(異種)의 감각을 아우르는 광활한 정보를 디지털 형태로 전환해 수용관리송출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의 접속적 기능이 원격통신기술의 발달과 접목되어 미디어 세계의 변혁을 불러일으켰고, 그러한 융합 효과가 경제정치사회문화의식 부문으로 파급됨으로써 산업구조, 권력구도, 사회관계, 생활양식 및 정신세계에 일대 변화가 초래되고 있다.

더구나 융합이 강조되는 시대에 태어나 융합적 생활환경 하에서 성장해온 융합 네이티브(convergence native)” 세대는 시공간 제약 없는 자유로운 행보로 일상생활에 임하고 있다. 예컨대, 스크린에 여러 개의 창을 띄우고 다중적 작업(multi-tasking)을 수행하며 다중적 삶(multi-lifing)을 즐기는 융합인(homo convergenticus)”으로 변신 중이다. 이처럼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고 인간마저 융합적 형태로 전환될 미래사회는 진리와 배리, 합의와 이의, 사실과 가치, 논리와 직관, 담론과 형상, 설득과 교감, 삶과 꿈이 자유롭게 교합할 융합문명기로 기록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문명사적 변환을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보다 긴 안목과 넓은 시각으로 인류사의 진전 과정을 조망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과 방법론을 겸비한 체계적 연구가 요청된다.

 

 

2. 연구내용, 범위 및 방법

 

문명은 사회적 상태이자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문명은 여행 중 순간적으로 포착가능한 경관인 동시에, 행로를 따라 이동하는 연속적 여정으로서의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순간적 컷에 해당하는 경관은 진보적/억압적 문명론이 지시하는 문명 개념에 가깝다. 양자는 향진이냐 퇴행이냐라는 진전 방향에 관해서만 견해를 달리할 뿐, “야만에서 문명 혹은 자연상태에서 문명상태로 진화하는 문명화 과정의 정적 단면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반면 낱개의 정지 화면들을 이어붙인 동영상에 비견할 수 있는 것이 과정적 문명관이다. 진보적/억압적 문명론은 주어진 상황 진단에 유용하며, 과정적 문명론은 역동적 변화의 이해에 적실하다. 그러나 문명은 하나의 정태적 경관이자 다른 상태로 이어지는 연속체의 일부이기도 하므로, 전환성 및 연속성을 대변하는 진보/억압론과 과정론은 택일의 대상이 아닌 지적 통합의 원천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연환경에서 인간, 자원, 권력, 조직, 문화, 신념 등에 이르는 수많은 구성요소들(building blocks)이 동일 시간대에 중첩되어 나타나는 문명적 경관은 주요 사건들을 계기로 특정한 문명적 경관을 축조한다. 그러나 새로운 문명세계는 전래적 관념이나 가치와 충돌함으로써 별도의 개념화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신()문명은 구()문명의 위기에서 배태하여 경쟁적 각축을 통해 완성되는 패러다임적 전환의 소산으로 간주할 수 있다.

과학자사회에 공유되어 적합한 문제와 해결책들을 강구하는데 사용되는 성과물의 총체라고 정의되는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개념을 사회적 패러다임(social paradigm)으로 전형한 프리초프 카프라는 사회적 패러다임은 한 공동체가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방식의 기초를 이루는 실재에 대한 관점을 형성한다고 규정하였다. 따라서 사회적 패러다임은 고착된 개념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적 장()이 위기에 처하는 순간 새로운 장으로 도약하는 역동적 성격을 담지한다. 패러다임을 제반 사회적 실행의 표준을 설정하는 준거틀로 정의하는 마뉴엘 카스텔 역시 사회적 패러다임을 개별 구성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전체 사회의 부가가치를 높여나가는 자기조직적 응집계(self-organizing coherent system)’라고 정의한 바 있다.

따라서 문명에 대한 패러다임적 접근은 지속적 과정으로서의 문명화에 관한 이해와 더불어 그러한 과정의 단면적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이중적 인식틀을 제공한다. 그러한 착상에 근거해, 본 연구에서는 분화(differentiation)’ 개념을 주축으로 한 패러다임적 문명론을 구성하여 문명사적 진단을 시도했다. , ()근대사회의 미분화 문명단계, 근대사회의 분화 문명단계 및 현대사회의 탈()분화(융합) 문명단계로 구분해 인류 역사를 조망하였는데, 이 같은 패러다임적 접근을 통해 연속성과 단절성이라는 문명사의 이원성을 동시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